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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s/Bryce

브라이스 캐년, 그 황홀한 계곡

이번 여행을 떠나오면서 꼭 해 보고 싶었던 것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앞에서 이야기했던 대로 자이언 계곡의 ‘더 내로우즈(The Narrows)’를 답사해 보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바로 브라이스 캐년의 바닥에 내려가서 엄청난 바위 기둥의 밑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브라이스 캐년의 바위 기둥들은 그야말로 놀랍다. 수 천, 수 만의 바위 기둥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무리 지어 서 있으면서도 하나하나 제 각각의 표정을 가지고 있다. 진시황의 병마용을 자연으로 끄집어 내어 수 백배로 확대시키면 이런 모습이 되려나……

브라이스의 끝자락으로 차를 몰고 가다 보니 날씨가 심상치 않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날이 흐려지더니 정상 부근에는 눈보라가 친다. 바람도 매섭다. 10월 중순의 날씨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다. 하긴 계곡 주변에는 이미 하얗게 눈이 쌓여 있다. 하루 이틀 쌓인 눈이 아니다. 여기는 이미 겨울이다. 해발 3000미터가 넘어가는 고도도 눈이 쌓이는데 한 몫을 한다. 기온이 떨어지지 않더라도 고도가 충분히 높으면 기압이 낮아지기 때문에 여간 해서는 눈이 녹지 않는다.

눈과 어우러진 브라이스도 환상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눈보라 때문에 카메라가 젖는다. 멋진 경치를 감상할 겨를도 없이 사진만 몇 장 찍고는 카메라를 감싸들고 차로 돌아왔다. 서너 군데의 포인트를 돌 때까지 계속 눈보라 속을 누비고 다녀야 했다.

그러던 와중, 아뿔싸, 렌즈를 떨어뜨려 버렸다. 애지중지하며 아끼던 광각렌즈를 카메라에 물리다 손이 곱아 제대로 끼워지지 않았던 것을 모르고 그냥 들고 뛰었던 것이다.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와 렌즈를 받쳐들고 자세를 취하는 순간, 아주 낯선 느낌으로 렌즈가 손을 스쳐 지나갔고, ‘어 이게 뭐지?’하는 순간에는 이미 바닥에 렌즈는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그나마 천만 다행스럽게도 계곡 밑으로 굴러 떨어지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이상 유무를 확인해 보니 크게 이상은 없어 보인다. 하늘이 도왔다. 그런데 15밀리에서 30밀리까지의 화각을 커버하는 광각렌즈인데 18밀리 밑으로는 줌이 작동하지 않는다. 결국 광각은 18밀리까지 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이야기. 사진을 하는 분이라면 이게 얼마나 속 터지는 일인지 잘 아실 것이다. 광각에서 1밀리가 얼마나 중요한데 3밀리나 손해를 봐야 하다니 말이다.

서둘러 포인트들을 돌며 사진을 찍고 마지막으로 선셋포인트에서 석양에 지는 브라이스를 찍음으로써 오늘의 출사는 마무리했다. 아직도 자이언에서 고생한 다리는 정상이 아니다. 아무래도 자고 나면 더 아플 것 같아 걱정이 된다. J 역시 제법 지쳐 보인다.

공원에 들어서기 전에 잠시 들러 예약한 숙소는 좀 엉터리같다. 난방도 잘 안되는 것 같고, 아침도 주지 않으면서 방값은 비싼 편이다. 이 동네가 원래 좀 그런 모양이다. 가까운 곳에 다른 마을이 없으니 그럴 법도 하다. 5년 전에 왔을 때에도 숙소에 대해서는 별로 좋은 기억이 남아 있지 않다. 듣도 보도 못한 소고기 튀김으로 느끼하게 저녁을 때우고 일찍 잠을 청한다. 내일 아침엔 꼭 브라이스의 아침을 찍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