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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s/Canyonlands

캐년랜드 국립공원(Canyonlands National Park)

모처럼 느긋하게 모텔에서 주는 아침을 먹기로 했다. 간단한 아침 뷔페였지만 먹을 것이 제법 많다. 토스트와 커피, 오렌지 주스로 아침을 해결한다. J는 와플을 만들어 왔다. 많이 달기는 했지만 즉석에서 만들어 따끈하게 먹는 와플도 맛있다. 월요일 아침, 주변에는 백발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대부분이다. 은퇴하고 한가롭게 여행 다니는 노부부들의 모습이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단체 관광객들은 보이지 않는다. 커플이 다니거나 많아야 친구인 듯한 두 커플이 함께 다니는 정도. 모여 있는 사람 수에 비해 식당은 무척 조용하다.

아치스와 캐년랜드 중에서 어디를 먼저 갈 것인가를 가지고 의견이 갈렸다. J는 캐년랜드를 고집했다. 5년 전에는 시간이 많지 않아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모텔 주인과 의논을 해 보고 나서 아치스를 선택했었고, 캐년랜드에 대해서는 그다지 미련이 없었다. 헌데 J는 사진 동호회에서 캐년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더 감명 깊게 들은 모양이다. 아예 아치스는 별로 볼 것이 없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기분이 좀 상했다. 그래도 난 한 번 다녀왔었는데 말이다. 다음날 아치스를 가기로 하고 캐년랜드로 향했다.

캐년랜드는 그린강과 콜로라도강이 만나면서 만들어 내는 거대한 풍경이 장관이다. 승용차로 갈 수 있는 뷰포인트들이 몇 군데 마련되어 있어 어렵지 않게 대자연의 거대함을 느낄 수 있다. 차에서 내려 2-30미터만 가면 발 아래로 수백 미터의 낭떠러지가 펼쳐진다. 그리고 거기서 몇 킬로 미터 떨어져서는 또 다시 몇 백 미터의 계곡이 펼쳐진다. 자연이 만들어 낸 거대한 조각이다. 저 멀리 절벽 아래 펼쳐져 있는 벌판에는 가느다란 물길과 함께 비포장 도로가 사방으로 이어진다. 승용차 보다는 사륜 구동차로 저 곳을 누비고 다녔어야 하는 데 많이 아쉽다.

천길 낭떠러지 앞에 섰는데 그다지 무서움이 없다. 좀 더 좋은 포인트를 찾기 위해 절벽 끄트머리를 따라 한참을 걸어 보기도 하고, 절벽 끝에 한참을 서서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기도 한다. 맑은 날씨였음에도 워낙 거리가 멀어 그런지 하늘이 약간 뿌연 듯한 느낌이다. 아주 추운 겨울이 되어야 멀리까지 쨍한 하늘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상상하기 힘들만큼 거대한 자연을 음미하며 몇 군데 포인트를 돌아다니다 점심 식사를 위해 모압으로 다시 돌아왔다. 왕복 150킬로미터 정도의 거리지만 이젠 그다지 멀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침에 먹을 것을 좀 준비해 오는데 미처 생각을 못했다.

캐년랜드 입구에서 좌회전을 하면 데드호스(Dead-horse)라는 주립공원이 나온다. 같은 국립공원 지역인데 따로 주립공원을 만든 이유도 잘 모르겠고, 따로 입장료를 받는 까닭도 잘 모르겠지만 들러 봐야 할 것 같았다. 국립공원들과는 달리 주립공원은 대개 뷰포인트가 한 두 곳 정도로 제한되어 있다. 데드호스 역시 전망대 하나의 뷰포인트가 전부. 하지만 이 곳에서 보이는 풍광이 또한 장관이다. 생각 같아서는 이 곳에서 석양을 기다리며 마냥 있고 싶었지만 가능한 많은 뷰포인트를 보고 싶어 하는 J때문에 다시 캐년랜드로 향한다.

차로 갈 수 있는 포인트들은 모두 살펴 보았고 시간이 좀 남는다. 아치스까지 가기엔 빠듯하다. 일몰이 가장 멋질 듯한 포인트를 골랐다. 풍경 사진은 해가 뜨고 난 직후, 혹은 해가 지기 직전이 가장 아름답다. 낮은 고도에 떠 있는 태양이 두터운 대기를 뚫고 내려 보내는 햇살은 한 낮의 태양빛과는 사뭇 다른 빛을 가지고 있다. 이 빛을 잘 활용하면 흔히 보기 힘든 멋진 풍경 사진을 찍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안내 책자에 멋진 사진이 나와 있는 곳을 다시 찾아 갔다. 해가 지려면 아직 40분 정도 시간이 남았다.

차에서 내려 나름대로 포인트라고 생각해 두었던 곳으로 찾아 갔다. 인적 없는 풀 숲을 헤치고 5분쯤 걸어가니 낭떠러지가 나온다. 바위 위에 삼각대를 펼치고 떨어지는 해를 기다린다. 지금 이 순간은 나 혼자다. 간혹 도롱룡이 발 밑으로 지나쳐 간다. 바위 위에 누워 하늘을 본다. 파랗다. 파랗다 못해 검푸르다. 세상은 내 발 아래 펼쳐져 있고 나는 하늘 아래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워 있다. 사진 따위는 찍지 못해도 상관없다. 지금 이 순간 느끼는 자유로움, 이 때문에 여행을 하는 것이다. 절벽 아래로 몸을 날리고픈 충동을 느낀다.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지금이라면 하늘을 날 수 있을 것만 같다. 살포시 몸을 날리면 저 너머 골짜기 마루턱에 살짝 내려 앉을 것만 같다.

결국 멋진 일몰 사진은 건지지 못했다. 해가 떨어진 다음 삼각대를 챙겨 주차장으로 돌아오다 보니 여기 저기 풀섶에서 사람들이 몇몇 나와 비슷한 차림으로 길을 찾아 나온다. 나와 같은 생각으로 자기만의 포인트를 찾아 나섰던 아마추어 사진가들이다. 그 중 눈인사를 나누게 된 사진가에게 아쉬움을 살짝 이야기해 본다. 전문 사진가들은 일년 내내 바로 옆에서 캠핑을 하면서 사진을 기다린다고 한다. 그럴만도 하다. 살면서 한 두 번 오게 되는 아마추어가 남을 감동시킬만한 사진을 찍는 다는 건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구멍 지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여행은 여행이고 사진은 사진이다. 여행을 하면서 작품 사진을 찍는 것은 도대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사진을 위한 여행이라면 그에 걸맞는 준비가 따라야 한다. 해는 언제 뜨고 지는지, 해가 뜨는 방향과 진행되는 방향, 그리고 매 시간마다 해의 위치를 가늠해서 최적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찾아 내야 하고 그 곳에 도달하기까지의 이동수단과 이동 시간을 면밀히 계산하여 계획을 세워야 한다. 치밀한 작전 계획이 필요한 셈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여행을 즐기는 편이 좋다. 사진은 그저 여행의 기억을 보조하는 수단일 뿐…… 서글프긴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