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rticles/Grand Canyon

그랜드캐년 노스림(Grand Canyon North Rim)

그랜드캐년은 너무나 유명한 곳이다. 누구나 가 보고 싶어 하는 곳. 그리고 라스베가스에 온 관광객이라면 한 번쯤은 다녀 오는 곳이 그랜드캐년이다. 그러나 그랜드캐년이 두 곳으로 나눠진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랜드캐년은 콜로라도 고원 지대에 콜로라도 강이 흐르면서 깎아낸 협곡이다. 따라서 한 쪽 면이 그랜드하다면 당연히 비슷하게 그랜드한 다른 면이 있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은 남쪽 벽면(South Rim)이다. 물론 북쪽 벽면(North Rim)도 있다.

사우스림보다 노스림이 훨씬 더 웅장하고 멋있다고 하지만 사우스림에서 가려면 4시간 정도를 더 가야 할뿐더러 고도가 높고 날씨가 좋지 않아 5월에서 10월까지만 일반인이 드나들 수 있다. 다행히 우리가 여행하던 주말까지 구경이 가능했기에 우리는 노스림으로 가기로 했다.

노스림은 사우스림에 비해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 아니어서 그런지 참고할만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 관광 안내 책자에도 상세히 나와 있지 않고 네비게이션을 뒤져도 쓸만한 정보가 없었다. 숙소를 찾지 못하면 그냥 차에서 지낼 각오로 최대한 가까이까지 가기로 했다. 중간 기점으로 지도에 나와 있는 제이콥호수(Jacob Lake)를 항해 차를 몰았다.

넓디 넓은 평원 너머로 해가 지는 모습은 장관이다. 해가 진 후에도 한동안 우리는 어슴프레한 어둠을 헤치며 운전을 해야 했고, 제이콥 호수에 도착한 것은 밤 8시가 넘어서였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삼거리에 주유소와 휴게소, 롯지 하나가 달랑 있을 뿐이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도중에 J가 롯지에 가서 문의를 하고 왔다. 근처에는 숙소를 구하기 힘들 것이고 25마일 정도 가면 자그마한 마을이 나오는데 그 곳에 가면 숙소가 있을 것이란다.

정말 창 밖은 칠흑 같은 어둠이다. 사슴을 조심하라는 표지판이 계속 나오는 것을 보면 굉장히 깊은 숲 속인 것 같다. 뒤에서 따라오던 차가 답답했던지 앞질러 간다. 이런 길에서 앞장서 주는 차가 있으면 운전이 수월해진다. 앞 차의 움직임이 순간 이상했다. 급브레이크를 밟더니 옆으로 무엇인가를 조심스레 피해간다. 역시나 사슴이다. 옆을 보니 사슴 한 무리가 길 옆에 모여 있다. 하마터면 내가 사슴을 칠 뻔했다.

숲 길을 한참을 달리다 휴게소 비슷한 곳이 나와 잠시 차를 쉬어간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쏟아져 내리는 별빛에 숨이 턱하고 막힌다. 그렇게 많은 별은 처음이다. 자다 깬 J 역시 소스라치게 놀란다. 뚜렷하게 은하수도 보이고, 저 쪽 산 너머로는 별똥별도 떨어진다. 공기는 청량하게 맑고, 하늘은 별로 가득하고, 그야말로 자연의 한 가운데에서 숨을 쉬고 있는 느낌이다.

다행히 프레도니아(Fredonia)에서 아주 저렴한 가격에 숙소를 구하게 되었고, 햇반과 깻잎, 사발면 등으로 저녁을 대신했다.

다음날 전 날 지났던 길을 되짚어 그랜드캐년으로 향했다. 어제 짐작처럼 태고의 원시림으로 이어진다. 120킬로미터 정도를 달려 그랜드캐년 노스림에 도착했다. 사우스림과는 정말 다른 풍광이 펼쳐진다. 사우스림은 사막지대에서 이어지는데 반해 노스림은 원시림 속을 한참을 지나야 만나게 된다. 아름들이 나무들이 하늘 끝까지 솟아 있고, 마침 가을의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노랗게 물들어 있는 단풍의 모습은 참으로 장관이다. 군데 군데 드넓게 펼쳐져 있는 자연의 잔디밭을 보면서 골프를 좋아하는 J는 드라이브 샷이 땡기는 모양이다.

노스림의 롯지는 한 폭의 그림 같은 마을을 이루고 있다. 고관 대작들이 흑인 노예들을 데리고 왔을 법한 고풍스런 전망대와 뷔페 식당, 한가로이 일광욕을 즐길 수 있는 나무 의자들, 여유로운 유럽의 어느 휴양지에 온 듯하다. 하긴 이곳의 롯지는 몇 년 치의 예약이 이미 되어 있다고 하는 걸 보면 이 곳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모양이다.

역시나 노스림에서 보는 경치는 사우스림과는 사뭇 다르다. 더 웅장하고 화려하다. 5년 전 사우스림에서 느꼈던 허전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5년 전의 여행기에 이렇게 적어 놓은 것이 있다.

‘여러 공원들을 돌고 Grand Canyon에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크기에 질려 버리고 나면 나머지 공원들을 둘러 보는데 문제가 있을 듯싶다. IMAX 영화에서 줄거리를 찾는 다거나 영화적인 재미를 찾을 필요는 없다. IMAX는 크다는 것 때문에 찾는 것이다.’

찾아 오기 힘든 곳인지라 관광객이 그다지 많지 않다. 단체 관광객은 더더군다나 찾아 볼 수 없다. 어제부터 이 곳에 오기 위해 오랜 시간을 운전하면서 고생한 걸 생각하면 역시 아무나 쉽게 찾아 올 수 있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그만큼의 보람은 충분히 있는 곳이다.

이번 여행에서 보고 싶었던 곳은 모두 방문해 보았다. 사진도 제법 많이 찍었다. 다행히 J역시 재미있었다고 하는 걸 보면 그렇게 형편없는 가이드는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랜드캐년의 사우스림을 마저 보고 갈 것인지를 의논한 끝에 라스베가스로 돌아가 도시 구경을 하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이미 이런 저런 컨벤션 때문에 대여섯 번이나 방문했던 나에게는 특별할 것이 없는 도시지만 J에게는 처음 와 본 도시였기에 나름대로 볼 것들이 좀 있겠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