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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에 만난 해병대 할아버지


볼더(Boulder)에서 기름을 넣을 생각이었다. 마을 초입에 허름한 주유소가 하나 있는 것을 그냥 지나쳤다. 조금 지나니 분위기가 이상하다. 마을이 끝나가는 느낌. 다음 주유소는 한참을 더 가야할 듯 하다. 무척이나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X-File에 종종 나오는 Boulder는 상당히 큰 도시였던 것 같은데...(콜로라도 주에 있는 Boulder가 그 도시였던 것 같다.)

차를 돌려 지나쳤던 주유소로 되돌아 갔다. 역시 허름하고 시골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기름을 넣고는 가게로 들어가 카푸치노와 치즈케익을 샀다. 조금씩 비가 오는 가운데 가게 옆의 벤치에서 케익과 커피를 먹고 있자니 개가 한 마리 온다. 순해 보여 케익 한 조각을 주었더니 냉큼 받아 먹는다. '아마 배 고픈 걸로 따지면 내가 너 보다 더 할 걸…… 넌 그래도 여기가 네 집이잖니' 속으로 생각을 하면서도 조금씩 나누어 준다.

 그러던 중 개 주인인 듯한 여자아이가 쪼르르 뛰어 와서는 개를 나무란다.

"구걸하지 말랬지? 이리와."

그 말을 듣고 나니 정말로 개의 표정이 구걸하는 듯 하다. 더 불쌍해진다. 늦은 아침을 개와 나누어 먹는 옆에서는 아까의 여자아이와 할아버지인 듯한 노인이 장난감 활을 가지고 놀고 있다. 우리 딸들 생각이 난다.

"How old are you?"

아이에게 물었다.

"Five..."

아이의 대답.

"Five and a half."

할아버지의 보충 설명이 이어졌다. 나도 비슷한 또래의 딸이 있다고 하면서 할아버지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눴다. 어디서 왔느냐-한국에서 왔다-한국차 좋다-^^-스바루가 한국차 맞지?-아니 일본차다.-구분이 잘 안된다....

이렇게 이어지던 중 할아버지는 해병대로 오끼나와에 근무 했다는 이야기를 꺼내며 한국의 상황에 대해 궁금해 하기도 했다.

"해병대는 강하기는 한데 머리가 나뻐. 최악의 조합이지."

라는 우스개까지 덧붙이는 할아버지. 무슨 사연이 있어 다섯살짜리 여자아이와 지저분한 개와 이 시골에서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할아버지 눈에는 혼자서 여행다닌다는 쬐끄만 동양 남자아이가 더 갑갑해 보일런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