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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스를 뒤로 하고 한 동안 우리는 별 말이 없다. 여기까지 온 이상 행선지는 당연히 캐피톨리프 국립공원이었고, 거기까지 가는 동안 별다른 포인트는 없다. J가 운전을 맡았다. 메사베르데를 본 기억이 없는 것을 보면 한참을 잤던 모양이다. 험한 바위산은 보이지 않고 한적한 농촌 마을의 서정이 펼쳐진다.

“이런 동네에 사는 아이 중에는 어쩌면 맥도날드나 버거킹을 모르는 아이도 있겠어요.”


잠에서 깬 걸 눈치챈 J가 말을 건낸다. 그랬다. 도시에서는 늘상 달고 사는 그런 간판은 이 곳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주유소도 어쩌다 스탠드 하나 달랑 세워져 있는 가게가 전부인 경우도 있다. 열심히 찾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잠시 사람사는 마을이 지나가고 나니 또다시 돌 산 틈을 돌아 길이 이어진다. 길은 계속 오르막으로 이어지고 이내 양 옆으로는 천길 낭떠러지가 만들어져 버렸다. 낭떠러지를 양 옆으로 두고 핸들을 이어 받는다. J에게 살짝 고소공포증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길을 어떻게 찾았는지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다.

하늘은 파랗고 뭉게구름은 하얗게 피어 오른다. 전형적인 가을하늘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보는 가을 하늘 보다도 서너 배는 더 파란 듯 하다. 눈을 부릅뜨면 별이라도 보일 정도로 짙은 푸름, 그리고 그 아래 노랗게 익어가는 타향의 가을, 사진이고 뭐고 그냥 잠시 차를 세워 놓고 하늘을 본다. 그리고 이국의 가을을 최대한 깊숙이 호흡해 본다.

산맥을 하나 꼴딱 넘고 나니 또다시 돌잔치다. 어린 시절, 스타워즈를 비롯한 헐리우드의 SF 영화들을 보면서 그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에 감탄을 하곤 했었다. 도대체 외계행성의 지표면을 어떻게 저리도 멋지게 상상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저리도 기기 묘묘한 자연 현상들을 상상만으로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 곳을 여행하면서 마치 선생님의 강의용 참고서라는 것을 처음 들춰 본 때와 비슷한 느낌을 갖게 된다. 상상이라고 생각했던 외계 행성의 온갖 모습들이 모두 그 곳에 있다. 어떤 곳은 알투디투와 에스피오가 조난당한 행성이었고, 어떤 곳은 방위군과 제국군 간의 치열한 지상전이 벌어졌던 벌판과 똑같다. 내가 그 동안 그 들만의 상상력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사실은 오롯이 그 들이 올라서 있는 대지의 모습 그 자체였던 것이다.

상상력, 혹은 창의력이란 얼마나 많은 조각을 가지고 레고 놀이를 하느냐의 문제이다. 그리고 놀이를 하기 전에 얼마나 많은 것을 경험하고 체험했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창의력이라고 해서 없는 것을 뚝딱 만들어 내는 재주를 일컫는 것이 아니다. 생각할 수 있는 것의 범위, 그릴 수 있는 그림의 범위를 최대한 넓혀 주는 것, 그것이 상상력과 창의력의 원천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오다 보니 어느새 캐피톨리프에 도착했다. 운전이 과했는지, 여행의 피로가 쌓여가는지 살짝 몸살기가 도는 듯 하여 J가 가져온 감기약을 염치 불구하고 얻어 먹고는 이내 골아 떨어져 버렸다. J는 그 사이에 캐피톨리프에서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곳을 한 바퀴 돌았던 모양이다. 문득 잠에서 깨어 보니 볼 것 없는 곳 괜히 돌고 나왔다고 혼자 투덜거리고 있다.

5년 전보다 많은 곳이 관광지로 개발되어 있다. 캐피톨리프에서 5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구즈넥(Goose Neck, 구부러진 오리 목처럼 물이 굽어 흐르는 곳)은 전에는 없던 곳이다. 역시 이 코스를 찾는 사람이 많아진 모양이다. 이 곳에 와서 J가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이런 거 하나만 한반도에 있었어도 대여섯 시간 차 몰고 가서 찍어 왔을텐데…”

캐피톨리프를 떠나 모압으로 가는 동안은 내가 운전했다. 역시나 피곤했던지 J는 이내  골아 떨어진다. 혼자 운전하고 돌아다니는 것도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긴 하지만 많이 피곤한 노릇이다. 둘이서 교대로 운전하다 보니 피로는 훨씬 덜하다. 그렇긴 하더라도 자이언에서 다친 다리는 잊을만하면 욱씬거린다.

모압에 가기 위해서는 24번 도로를 타고 가다 I-70고속도로를 타게 된다. I-70 고속도로 가기 전에 약 80마일 정도의 구간이 지도 상에는 거의 곧은 직선으로 표시되어 있다. 실제로도 그렇다. 높낮이만 있을 뿐 좌우로는 변화가 없다.
핸들을 건드릴 일일 없다. 물론 배수를 위해 좌우로 낮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가볍게는 잡고 있어야 하지만 내 앞으로 이어진 길은 완전히 동일하게 내 뒤로도 이어져 있다. 아주 멀리 희미하게 바위 산이 몇 개 보일 뿐 사방은 완전한 평야다. 우리나라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일이다. 아쉽게도 골아 떨어진 J는 이 광경을 놓치고 말았다. 하긴 내가 졸면서 놓친 풍광도 제법 될텐데…

역시 5년 전에는 찾아 볼 수 없었던 고블린(Goblin)이라는 주립 공원을 잠깐 들렀다. 종유석을 몇 십 배 정도로 확대해 놓은 듯한 바위 돌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다. 모양도 제 각각이고, 해가 뉘엇뉘엇 지고 있는 걸 보면 한 시간 정도만 기다려 석양이 되면 아주 예쁜 색을 띌 것 같다. 하지만 모압까지는 제법 거리가 남아 있기에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 잠시 몇 컷 찍고 다시 길을 떠난다.



늦은 시각에 모압에 도착했고, 일요일 저녁이라고 방심하고 있던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대부분의 모텔들에 빈 방이 없었다. 마을의 거의 끝까지 가서야 방을 잡을 수 있었다. 카운터를 보고 있던 아가씨가 착해 보여 디스카운트를 요구해 봤더니 많이 깎아준다. 하루치 밥값은 충분히 빠진 듯 하다.

숙소 옆 중국식당에서 저녁을 하고 맥주 캔 몇 개를 사 들고 들어와 목을 축인다. 생각보다 J도 재미있어 한다. 가끔 의견이 어긋나는 경우도 있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크게 문제가 된 적은 없다. 내일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을 아치스(Arches National Park)국립공원과 캐년랜드(Canyonlands National Park)가 기다리고 있다.


Posted by 이동구